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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을은 지품면을 가로질러 오십천의 원류가 지나갑니다.

    과거에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와 손수 빚은 옹기로 유명한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몇 분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산이 많은 오지입니다

    수 십년 전 사라호 태풍 때 오십천이 범람해서 밭이 사질토로 바뀜에 따라 오십천 주변으로 복숭아, 배, 사과 등의 과수농사를 많이 짓고 있습니다

    강 따라 마을이 생기다 보니 강과 도로 주변으로 마을이 일렬로 있습니다.

    삼화리는 용수, 관동, 전여 세 마을을 합하여 삼화라 하였습니다. 삼화1리는 15세기경 나씨(羅氏)라는 분이 개척하였습니다. 삼화리 마을 한 가운데에는 용이 등천하였다 하여 용수골이 있으며 삼화2리는 월전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오씨라는 분이 개척하였으며, 마침 보름달 같다 하여 달밭골, 월밭골이라고도 합니다. 용수골 북서쪽에 있는 마을은 절의 흔적이 있다 하여 사리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리골 동남쪽에 위치하며, 마을 앞 구읍곡에 관원들이 살았다 하여 관동이라 합니다. 오천리는 오일(午日)의 오 자와 김천(金泉)의 천 자를 따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천1리는 배씨가문의 5형제가 마을 보를 만들고 오가대리라 하다가 오일리로 개칭이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야시홀군과 신라의 야성군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구읍곡이라고 합니다. 오천2리는 상금, 마금, 하금이 있으며 일제 때 금광이 있었고, 냇가에 사금을 채취한 던 곳이었습니다. 금이 많이 난다 하여 금곡, 돈골이라고 하였으며, 천하명장 정간지의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금이 많이 생산된다 하여 김치, 김천동이라고도 합니다.

    용마총

    품면 삼화리에는 돌무덤 세 개가 나란히 있습니다.신라시대 한 화랑이 궁술을 연습하던 곳으로

    어느날 용마(龍馬)에게 ‘네가 이 화살을 물고 오라“하고 활을 쏘았습니다. 나는 듯 용마는 뛰어갔다 되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 화랑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말의 목을 쳐버렸습니다.그 때 한 농부가‘말이 화살을 찾다가 간 뒤 화살이 떨어졌다’하며 화살을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비로서 이 화랑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자리에 말을 묻고,양 쪽에 말안장과 칼을 따로 묻어 나란히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